다음으로 우리가 간 곳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였다.
용인에서 두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양화진 공원에서 우리는 점심식사를 했고 노현숙 간사의 설명을 들으며 외국인 선교사 묘지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1893년 개설이 허가 되었고 500여개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이곳 최초의 매장 선교사는 존 헤론이다. 한국의 복음화를 위하여 의료 선교에 뛰어 들었고 이질에 걸려 질병으로 숨졌다고 한다. 이렇듯 이 곳 양화진에는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생명을 바친 많은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이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새벽에 이 땅을 밟았고 고아원을 설립하였고(언더우드 학당), 교회를 설립(정동교회)하였다.
4대에 걸쳐 사역하였으며 모두 양화진 묘지에 안장 되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부부가 함께 이 땅에 들어왔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배재학당의 창설자이다. 배재학당은 고종이 지어준 이름으로 정부의 정식인가를 받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근대식 교육 기관이었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무덤에는 시신이 없는데 이는 군산앞바다에서 그가 탄 배가 침몰할 때 한국인 소녀를 구하다가 익사해서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엘리스레베카 선교사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딸로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최초의 외국인으로 전해진다. 아버지인 아펜젤러 선교사가 순교한 10년 후 이 땅으로 파송 받아왔고 한국 젊은 여성을 위해서 힘썼고 이화여대의 초대학장이 되셨다고 한다.
메리 스크랜튼 선교사는 52세의 나이에 이 땅에 왔고 이화학당을 세웠고 이를 통해 한국 여성에게 복음을 전하고 여성교육과 선교에 앞장섰다.
셔우드 홀 선교사는 ‘크리스마스 씰’의 창시자이다. 그는 16년간 한국에서 의료사업을 하였는데, 해주 폐결핵 환자 요양원을 한국 최초로 개설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씰’의 창시자로서 한국에서 폐결핵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했다.
호머 헐버트 선교사는 YMCA의 창설자이고 고종의 밀사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친서를 전달하는 사명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한국을 조국보다도 더 사랑하였고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국빈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이듬해에 별세하였다.
루비 켄드릭 선교사는 26살의 어린 나이로 이 땅에 와 8개월간의 짧은 선교활동을 마치고 사망하였는데, 루비 켄드릭 선교사의 묘비에는 이런 내용의 고백이 적혀있었다.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
이외에도 한국을 위해 희생한 많은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며 또 한 번 숙연해졌다. 자신의 가족도 아니고 민족도 아니고 자신의 조국도 아닌 이곳에 와서 이 땅을 구원하고자 했던 선교사들의 사랑의 마음이 느껴졌다. 더구나 죽어서도 조국이 아닌 한국 땅에 묻히고 싶어 하셨다는 고백에 더 진한 사랑의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 분들은 그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도 이런 희생을 하셨는데 목자를 통해서 아버지의 큰 사랑과 은혜를 입고 영적인 많은 것들 배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15기 훈련생들은 이곳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를 둘러 본 소감을 나누며 국내 비젼 트립을 마쳤다. 모두들 많은 것을 느끼고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